徐智秀用《阿里郎》民歌打开美国音乐市场(1)
아리랑 포크로 미국의 마음 열었죠
기타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 뒤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울해하던 그녀는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밝은 아이가 됐고 교내 아카펠라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뉴욕대에 진학한 뒤 그녀에게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였다. 뮤지션이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는 불같았다.
엄마 아빠는 제가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을 갖길 원하셨어요. 그렇게 음악이 좋으면 차라리 줄리아드음악원에 가서 클래식을 하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건 부모님의 대리만족일 뿐이었죠. 전 그럴 때마다 제 심정을 담아 작곡을 했어요.
스무 살의 수지는 부모와 전쟁 같은 격론을 벌인 뒤 유어 배틀필드(your battlefield)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듣겠다고 청하는 사람이 없어도 카페와 클럽, 때로는 지하철역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유명 레코드 회사를 찾아가 음반을 내 달라며 즉석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하는 동양인 여자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칭찬보다는 풋내기라는 비웃음이었다. 그럴수록 수지는 마이크를 없애고 육성으로 노래했다. 노래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저항이었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난, 차별, 불안감 속에서 오로지 기타에 의지해 노래한 지 4년. 음반 프로듀서 출신으로 EMI 회장을 지낸 거물 찰스 코플먼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신의 목소리가 좋아. 음반을 만들고 싶소.
세계적인 여성 로커 앨라니스 모리셋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글렌 발라드가 프로듀서를 맡겠다고 나섰다.
마침내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데뷔 앨범이 2005년 4월 소니 계열의 에픽레코드에서 나왔다. 앨범 제목은 바로 그녀 자신인 수지 서(Susie Suh). 뉴욕타임스는 이 동양계 신인가수를 노라 존스 등 여성 싱어송 라이터에 견주었다. 풍부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멜로디는 사랑을 향한 갈구를 가장 설득력 있게 노래한다고 극찬했다.
수지 서는 22일 한국 땅을 밟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자매 피아노 트리오인 안 트리오와 경기 성남아트센터(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6월 8일) 등에서 4차례 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수지 서는 자신의 앨범 수록곡 라이트 온 마이 숄더를, 안 트리오의 클래식 연주에 맞춰 올 아이 원트 등을 부를 예정이다.
뉴욕타임스에 호평이 실렸을 때도 딸의 실력을 믿지 않았던 부모는 한국 신문기자가 나를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비로소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우상인 빌리 홀리데이만큼 깊고 허스키하며 음률은 관조적이다. 댄스음악이나 발라드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음반을 냈더라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성공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할 뿐이라고 답했다.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빙긋 웃는 그녀. 수지 서, 아니 심지 굳은 한국인 여가수 서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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